사회, 경제

원로 의사의 호소 “의사도 정부도 국민 위해 일해… 늦었지만 대화해야”

太兄 2024. 4. 4. 19:19

원로 의사의 호소 “의사도 정부도 국민 위해 일해… 늦었지만 대화해야”

[의대 증원 갈등] 전공의 파업 7주째… 원로의사 최동섭의 호소

입력 2024.04.04. 03:00업데이트 2024.04.04. 07:20
 
내과 전문의인 최동섭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가 28일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과장,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최 교수는 정년 퇴임 후 정부과천청사 의무실에서 6년째 공무원들을 진료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최동섭(73)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올해로 6년째 매일 아침 서울 성북구 집에서 정부 과천청사 의무실로 출근한다. 서울대 의대 출신 내과 전문의인 그는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과장,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의료계 원로다. 정년 퇴임 후 2019년부터는 정부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의사)로 공무원 등을 진료하고 있다. 하루 15명 안팎을 진료하는 그가 지금까지 본 공무원 환자만 최소 5000명이 넘는다.

공무원을 진료하는 의사인 최 교수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3일 두 차례 진행한 본지 인터뷰에서 “의사도 공무원도 모두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최근 의정(醫政) 갈등으로 서로를 향한 불신이 너무 커진 것 같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만나겠다고 했으니 하루빨리 대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의무실에서 환자로 만나는 공무원들도 의정 갈등에 관해 얘기하나.

“간혹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기도 하고, 의사·의대생 가족이 있는 공무원은 ‘빨리 잘 해결되면 좋겠다’고도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면 결국 그 사이에 낀 환자와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내과 전문의인 최동섭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과장,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최 교수는 정년 퇴임 후 정부과천청사 의무실에서 6년째 공무원들을 진료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공의들을 만나 대화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이미 만났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대화 제안도 늦은 감이 있다. 그래도 이번 대화 제안이 사태 해결 실마리가 되면 좋겠다. 전공의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지만, 대통령 제안에 화답해 하루빨리 대화 자리에 나왔으면 한다. 나와서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고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대통령이 대화를 제안했으니 만남이 성사되면 열린 마음으로 전공의들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 대통령도 ‘과학적 근거를 갖고 통일된 안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양쪽 모두 결론을 정해놓고 만나선 안 된다. 한 발씩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계가 말하는 ‘증원 백지화’도 한 명도 늘리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의료계 원로이자 필수 의료인 내과 전문의로서 의대 증원은 필요하다고 보는지.

“필요하다. 다만 ‘한꺼번에 2000명’이 아닌 ‘500~1000명 증원 후 재논의’가 바람직해 보인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비뇨의학과·응급의학과 상황, 지방 병원들 사정을 보면 의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기초의학 교수 등 의대 교육 여건도 감안해야 한다. 더 뽑아도 흉부외과, 소아과로 안 가면 의미가 없다. 정부는 거기에 방점을 둬야 한다.”

내과 전문의인 최동섭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남강호 기자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왜 이런 갈등이 벌어졌다고 보나.

“지금 현업에 있는 의사들이 아닌, 나같은 선배 의사들의 책임이 크다.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의료계 반발로 의대 정원 351명을 감축한 것이 현 사태의 단초가 된 것 같다. 인구도, 평균 수명도 늘어나는 추세에서 그때 의대 정원을 줄이지 말고 오히려 조금씩 늘렸어야 했다. 선배 의사로서 마음이 무겁고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를 발표하고,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는데.

“사람(의사)만 늘린다고, 월 100만원 더 준다고 흉부외과·소아과 가진 않는다. 서울 대형 병원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전공의 비율이 40%가 넘는다.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를 확실히 올려주고, 미국·유럽처럼 전공의 수련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줘야 병원이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할 수 있다. 건강보험 말고 또 다른 ‘파이’를 만들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 약속을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피부로 느끼고, 믿고 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그러면 오히려 이번 일을 기회로 우리 의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면서 환자와 국민들 불안도 커지고 있다.

“교수들은 제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사직서를 낸 것이다. 중환자·응급환자를 떠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의사로서의 기본이고, 후배들이 그럴 것으로 믿는다. 지금도 계속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을 국민도 믿어주시면 좋겠다.”

☞최동섭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1951년생. 내과 전문의. 1975년 서울대 의대 졸업 후 1980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했다. 1984년 고려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가 된 뒤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과장,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9년엔 포브스 선정 ‘대한민국 100대 명의’에 꼽히기도 했다. 2016년 정년 퇴임 후 2019년부터는 정부과천청사 의무실 내과 의사(기간제 계약직)로 공무원들을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