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반도체에 명운 걸린 나라 정치권의 망동

太兄 2025. 2. 19. 20:09

반도체에 명운 걸린 나라 정치권의 망동

조선일보
입력 2025.02.19. 00:30업데이트 2025.02.19. 07:31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제422회국회(임시회) 제1차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김원이 소위원장이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 3법 등 논의를 위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스1

반도체특별법이 2월 국회에서 또 무산될 상황이다. 민주당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을 포함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일 예외를 인정할 것처럼 언급했으나 민주노총 등이 반발하자 결국 없던 일로 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남 탓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주 52시간 예외 조항 없이는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국민의힘의 몽니 때문”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주 52시간 예외 허용에서 왜 유턴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외치는 ‘성장’은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이견이 없는 부분까지 무산시킨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선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는 기업이 4곳 중 3곳에 달했다.

삼성의 경쟁자인 TSMC의 연구·개발팀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고,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896(8시 출근, 9시 퇴근, 주 6일 근무)’ 시스템이 일반적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밤새워 연구하며 혁신을 이뤄내는데 한국 기업의 연구소들은 저녁만 되면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국회와 거리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지만, 해외에선 탄핵보다 한국 정부의 경제 산업 정책 방향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는 “해외 투자자들은 대통령 탄핵 심판보다 반도체특별법 통과 여부, 상속세 완화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와 블랙록·핌코 등 해외 투자자들을 만났다.

이재명 대표는 연일 성장과 ‘경제 중심 정당’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에 국한해,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 52시간 예외를 인정하자는 상식적 요구조차 거부하면서 무슨 ‘경제 정당’인가. 무수히 많은 법안을 일방 강행 처리했던 민주당이 국민의힘 때문에 반도체법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여기서 지는 쪽은 패권을 잃는다. 한국은 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정치권이 하는 행태를 보면 망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