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임승국의 百濟史

太兄 2023. 6. 13. 16:10

2020-06-25 22:46:43


임승국의 百濟史

제 전공이 백제사이고 백제사는 그야말로 저의 의중의 역사입니다.
제가 경희대 영문학 교수시절 때 우연히 중국 25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5사 가운데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다음으로 여섯번째 책이
송서(宋書)입니다.
하루는 윤영춘 박사댁에 놀러갔다가 그 분이 갖고있는 장서 중에서 우연히 이 송서를 끄집어 냈습니다.
윤 박사가 이걸 보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제가 펼친 곳이 송서 97권 '백제의 전'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기록을 무심코 쭉 읽어 내려갔지요.
중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까지 그곳에서 성장했으니 한문실력은 그런대로 있어서 쭉 읽어보니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서에 기록되어있는 백제는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의례히 백제를 생각할 때면 연상되는 것이 의자왕이고,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 삼천궁녀와 낙화암과
백마강, 그리고 다이빙 앤드 풍덩 등입니다.

그런데 송서 97권을 보니까 아예 백제의 위치부터가 달랐습니다. 반도가 아니었습니다.
현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산동반도를 지나 양자강 남북의 평야지대를 포함한 중국동해안 일대를
백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고서 그 때 하고 있던 영문학이라는 낡아빠진 학문을 집어 치우고 스승도 안내자도 없이 한국
상고사라는 난장판 학문에 뛰어 들었습니다.

만 5년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직장도 없이 도서관에 파묻혀서 사서삼경과 25史와 씨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
습니다. 6년 만에 다행히 명지대학으로부터 다시 교수발령을 받은 후에, 영문학 교수가 아닌 한국고대사를 강의
하는 사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학문의 안내자가 바로 백제사였으니, 오늘 강의하는 것도 백제사의 이해라고 하면 비로소 말문이
열립니다.

송서97권 백제전의 머릿부분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송서에만 이런 기록이 있고 다른 기록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25사 중 송서 다음이 양서(梁書)인데, 양서 54권 백제전에도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양서 다음은 남제서(南濟書)입니다. 당시 양자강 남쪽에는 제(濟)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위(北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남제서에도 백제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더 엄청납니다. 당시의 백제왕은 무령왕의 아버지인 동성왕이었습니다.
동성왕의 무덤이 산동반도에 있다고 25사에 기록되어있고요, 동성왕은 산동반도에 서경(西京)을 설치하여 직접
도읍하면서 대륙을 경영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군사·외교정책은 가까이에 있는 위나라와는 전쟁으로 상대하고, 양자강 남쪽의 남제와는 우호관계를 맺는
등의 정책을 폈습니다.

동성왕은 남제의 소도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실로 엄청납니다.
아마 간덩이가 작은 사람은 이 글만 보아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요서나 진평이라고 했던 백제의 세력이 놀랍게도 남쪽으로 확장되어 북위의 군대와 싸워 이겼고,
또 한 때는 양자강 남쪽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일곱구역으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을 각각 파견하여 통치하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총독 일곱명을 두고 중국동해안을 싸그리 지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중국인들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남제서 백제전의 머리부분을 다 뜯어버렸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으로 오는 25사 중 남제서를 보면, 백제전의 앞부분이 뜯겨나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글씨가 없는 공백이 하얗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백제전이라는 제목은 있는데 그 다음이 빈칸이란 말이예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강시단야(降屍丹野: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붉게 물들였다)인데,
똥되는 놈을 시체로 만든 자는 백제 군대이겠죠. 그리고 그 빈칸은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중국본토에는 오리지날 25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에는 물론이고요.
중국본토와 대만에 가공하지 아니한 원본 25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흔하지 않지만. 중국 가는 사람들은
오리지날 25사를 구해서 남제서 백제전을 펼쳤을 때, 공백이 아니라 글씨가 꽉 차 있다고 한다면 무조건 갖고
와야 합니다.

중국지도에 있어 동해안 지역은 사실상 중국땅의 전체나 다름없습니다.
깊은 오지에는 사람들이 살지를 못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집결되어 있고 중국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 중국 동해안 지역입니다.
모택동도 여기에 사는 중국인구의 수를 8억이라고 했습니다.
전체 10억 중에서 8억의 인구가 이곳에 몰려 살고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지역을 몽땅 백제가 지배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요즘 남북사학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토론하자고 하는데, 그건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우리 사학계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푹 젖어있어서 노태우정권은 또 그런 사람을 뽑을테고, 그래서 '마피아단'을
남한대표로 보내면 북한사학자들한테 비웃음만 당할 것입니다.

북한 사학은 60년대 초에 한사군문제를 싹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낙랑 현도 진번임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마주 앉으면 남쪽이 망신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학의 주류가 민족주의 정예학자로 되기 전에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사학 관계서류를 모아서 연변대학에 기증을 했습니다. 약 몇 천권 보낸 모양입니다.

연변대학 총장이 그걸 읽어 보니까 식민사관이 그대로 남아있길래, 예를 들어 김철준씨가 쓴 문화사관이나
이기백씨가 쓴 한국사의 무엇 등등이었는데, 무슨 이런 책을 보냈느냐 하면서 모조리 폐기처분해 버렸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보내 온 사서는 모조리 식민사학에 젖어 있어서 폐기처분했다는 사실, 이것만큼 대한민국 망신
시킨 적이 어디 있습니까? 해방 이후 40-50년동안 우리는 식민사학을 복창 복습했다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고쳐야 할 事大主義

시간이 조금 더 남았으니, 그럼 '똥되는 놈'얘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자꾸 똥되는 놈이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국호문제에 있어서 중국(united states of china)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똥되는 놈이 우주의
가운데, 즉 태양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제후국이 됩니다.
이것은 아주 원초적인 사대주의 발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중국이라 하지 말고 지나라고 하면 됩니다.
이웃 일본인도 지나라고 하고 서양사람들도 차이나라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 중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잘생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 나와있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라는 구절도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아니 우리 역사가 몇년인데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우리 문화사가 500년밖에 안됩니까? 서양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니까 한자를 중국 글자(Chinese
character)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서양 중심의 가치관에서 하는 말이고, 이제부터의 세계는 우리 중심의 문화세계, 우리 중심의 가치관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알파벳을 가르칠 때 영문학 교수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백인종이 모여 세운 나라가 USA인데, 앵글로 색슨족이 주류족입니다.
USC라고 하면 차이나를 말합나다. 똥되는 놈들 민족 가운데 주류족은 USA의 앵글로 색슨족에 해당되는 한족
(漢族)입니다. 이 한(漢)은 민족의 이름도 나라의 이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한테서 표절을 해 갔습니다. 한단고기(桓檀古記)할 때의 '한'(桓, 원음은 '환')에서 한이라는 발음을
따 갔던 것입니다. 이 한(桓)은 한족(漢族)이 아닙니다.
동이족(東夷族)입니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 동이족입니다. 여기서 이(夷)자를 흔히 오랑캐
라고들 합니다. 중국 25사 가운데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제목이 동이열전(東夷列傳)인데,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전부 다 나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인 우리는 전부 오랑캐가 되어 버립니다.
'나는 오랑캐 올시다'라는, 성은 오씨요 이름은 랑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사대주의 사상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의 중국이라는 용어도 문제이지만, 이(夷)자를 오랑캐
라고 훈을 붙인 옥편의 저자는 더 문제가 많습니다.
한문 옥편의 원조가 되는 것은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인데, 이 옥편의 역사가 약 2000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夷)자를 찾아보면,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그 다음에 '고문인동
(古文仁同)'이라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랑캐란 말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누가 이(夷)를 오랑캐로 말하면,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古文仁同'이라는 한마디로써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동양오행철학에 의하면 木은 東, 火는 南, 金은 西, 水는 北, 土는 中央에 해당됩니다. 오행을 색깔로 말하면
東은 靑, 西는 白, 南은 赤, 北은 玄이고 中央은 黃입니다. 오상(五象)을 방위에 배치하면 仁은 東, 禮는 南, 義는
西, 智는 北, 信은 中央입니다. 동양철학 속에서 그 근거를 지니고 있는 글자인 仁을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동이족이야말로 중국대륙 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에서 사는 민족이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지역을 백제가
경영했습니다. 따라서 중국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이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즉 우리 선조들은 지나라는 연합민족국가를 형성한 원료입니다.

우리의 5000년 역사가 중국문화의 지류를 따라 흘러서 겨우 마시고 살아 연명해 온 역사라고 붓놀리는 사람들
이 그따위 수작을 해 왔지만, 우리 민족이 과연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목숨을 겨우 연명해 온 민족입니까?
그렇치가 않습니다.
동양의 역사문화 속에서 질풍노도와 같이 군림한 역사문화민족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알맹이요,
핵심입니다. 이제부터는 반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는 지나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 글자입니다.
약 4만 3천여 자가 옥편 속에 있는데, 글자 하나 하나마다 대개 발음기호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지나인은 한글을 모르니까
자기네 발음기호를 적었습니다.
즉 '轄覺切'으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切'은 '轄覺切'이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첫글자에서는 자음(하)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가)과 받침(가)을 취해
읽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轄覺切'로 중국옥편에는 2000년동안 적혀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은 '學'발음을
못하고 '쉬에'라고 합니다. 가,띵,밑으로 끝나는 글자를 사성 중 입성이라고 하는데,
지나인은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인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이고, 한민족의 발음으로서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100% 우리말로 적혀있는 것이 지나인의 옥편이고, 따라서 우리가 표준어를 쓰고 있는 한문자의 주인공
입니다.
한글만이 우리문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문자야말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지금까지 전해준 고마운 글자입니다.

[민족사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정말 우리 문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이제부터 한자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어떤 탕자의 비유
마냥 말이죠. 백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돈을 객지에서 다 써 버려서, 남의 돼지우리에 버린 밥껍질로 주린
배를 채우다가 하루는 탄식합니다. '나의 아버지집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이 있었건만, 나는 객지에서
헐벗고 굶어죽게 되었구나' 하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런 탄식끝에 이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다시 힘차게 뛰어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앉고 맞으며,
'내 아들이 다시 돌아왔노라'하며 양잡고 소잡아 축제를 엽니다. 그래서 탕자는 또다시 백만장자가 됩니다.

이제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입니다. 옛집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에게는 과연 그런 용기가 있습니까? 옛집을 기억은 하고 있습니까? 옛집이라는 것은 상고사입니다.
과제인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 마치 탕자가 자기 본래의 집을 향해 돌아가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 한국사의 남아
있는 과제입니다.

자기의 옛집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한문(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는 것이 첫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없었고 이를 기술한 고전(古典)이 없었더라면, 인류역사상 저 'Renaissa
nce'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승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