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21대 대통령 선출 투표장에서

太兄 2025. 5. 31. 19:59

[김대중 칼럼] 21대 대통령 선출 투표장에서

지금까지 60년 기자생활 동안
대통령 10명·4번의 정권교체
이번만큼 두려운 선거가 없다

민주 사회서 진정 두려운건
투표로 뽑힌 '선출된 독재자'
그렇다면 유권자 책임은 없나

대한민국 정체성 함께 고민을

입력 2025.05.30. 23:57
 

60년 기자 생활에서 나는 10명의 대통령을 겪었고 4번의 명실상부한 정권 교체(그것은 차라리 권력 교체였다)를 경험했다. 그 권력 교체는 여야의 단순 교체를 넘어서 보수당에서 보수당으로, 또는 좌파에서 좌파로 넘어간 경우를 제외한 좌·우의 교체를 의미한다. 즉 ①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②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③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그리고 ④문재인에서 윤석열으로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모든 여론조사와 지표가 가리키는 대로라면 내일모레 다섯 번째의 좌·우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 어떤 정권 교체도 이번만큼 불안하고 두렵고 암울하기까지 한 적이 없었다. 과거 경제·안보·국방·사회 제반에 걸친 좌파 정권의 방향은 비록 견해는 달랐어도 충분히 예시가 가능했고, 또 우파적 독선에 사로잡힌 정치에서는 오히려 변화를 추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 정치 환경의 중화(中和)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른 것 같다. ‘이재명’을 모르겠다’ ‘좌파의 정체성이 어떤 것이냐’는 등의 의문은 갈수록 강하게 남는다. 보수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맥없이 무너지고 좌파는 정말 놀라운 속도와 농도로 이재명을 업고 나왔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주제의 책을 쓴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오늘날 민주주의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략)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하고 혹은 선거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고까지 한다. (중략)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꾼다. 그들의 시도는 언제나 점진적이고 합법적 방식이어서 나라의 민주주의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선출된 독재자’-오늘날 민주 사회에서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그냥 독재자가 아니다. 바로 ‘선출된’ 독재자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즉 선출을 정당화 수단으로 삼은 독선적 정치인이다. 전 세계에 걸쳐 우리는 민주주의의 퇴색을 경험하고 있다. 민생의 어려움과 안보적 위협 속에서 자국민(自國民)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법과 규칙과 제도를 넘어서는 탈권 정치, 강압 정치를 정당화하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되살아나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매가(MAGA)주의는 바로 이런 경향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이재명씨가 트럼프의 폐쇄적 자국 이기주의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한 조짐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선출된 독재자’의 또 다른 문제점은 독재자를 선출한 국민의 무책임성이다. 민주제하에서 지도자와 의회를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 즉 국민이다. 그러면 국민이 누구를 뽑든 정당화되는 것인가? 선택자로서 국민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국민이 뽑은 사람이 독재자든 무능력자든 숨겨둔 전과가 있는 범죄자든 국민은 책임이 없는 것인가? 국민은 당장 눈에 보이는 비상계엄의 헛발질이나 내란의 반헌법성에는 민감하면서 선출된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란에는 둔감한 것인가?

슐츠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최근 NYT 온라인 신문에 ‘자유민은 자유 언론을 필요로 한다’는 글을 실었다. 그는 그 글에서 “우리(NYT)는 레지스탕스(저항 조직)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의 반대자도 아니고 누구의 치어리더도 아니다. 우리는 진실과 국민의 알 권리에 충성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그의 언론관은 정론이고 원론이다. 한국의 언론은 미국의 NYT가 아니다. 미국에는 ‘북한’도 없고 비무장지대도 없다. 한국의 언론은 레지스탕스는 아니지만 반대자도 찬성자도 아닐 수는 없다. 문제는 이번 선거가 단순히 누구를 뽑고 누가 이기고 지고 하는 승패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21대 대통령 투표용지를 앞에 둔 심경은 나라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민생 불안도 아니고 미국의 관세 압박도 아니고 경제 침체도 아니며 주한 미군의 감축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문제다. 이미 지난날 반체제 사상 문제로 투옥됐거나 현장을 떠났던 사람들이 속속 이재명 옆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새 정권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게다가 트럼프의 어린아이 같은 ‘김정은관(觀)’에 따른 대북한 정책이 신(新)좌파 정권의 대북 정책과 어떻게 교집합을 이룰 것인지-그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