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도 모르는 시대
부끄러움도 모르는 시대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충남대 교수 시절 1저자로 쓴 학술지 논문 수십 편이 제자의 학위 논문과 유사하다는 제보를 받은 것은 2주 전이었다. 연구 대상과 장소, 실험 방법과 데이터, 결론 등이 일치하는 ‘제자 논문 베껴 쓰기’ 정황이 10여 편에서 발견됐다. 학위 논문을 쓴 석·박사생이 아니라 왜 지도 교수가 1저자 자리를 차지했을까. 본지 보도 이후 이 후보자가 제자 학위 논문에 나오는 비문과 오타까지 베꼈다는 지적이 이어져 ‘지명 철회’ ‘자진 사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후보자는 이공학 분야와 국가 연구 개발 과제를 학위 논문으로 쓰는 관행을 고려하면 제자 논문 가로채기도, 표절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본지가 취재한 이공계 교수들은 “지도 교수가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위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할 땐 학생이 1저자, 지도 교수는 교신 저자로 이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연구 과제도 마찬가지였다. 1저자와 교신 저자가 동일하게 인정받기에 구태여 논문을 쓴 학생이 아닌 지도 교수를 1저자로 넣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가 1저자 논란을 벗어나려면, 학생의 학위 논문을 발전시키고 자기만의 문장으로 새로 써야 했다.
이런 가운데 1저자 자리를 빼앗긴, 피해자인 줄 알았던 제자들의 호소문이 보도됐다. 작성자가 누구인지, 몇 명이 참여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이 후보자가 연구 기획, 계획서 작성부터 결과 검토, 세부 수정·보완까지 직접 수행했다며 “교수님이 주 저자(1저자)인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이 수상했다. 사실이라면 제자들은 학위를 반납해야 마땅하다. 석·박사 학위는 지도 교수가 도와주더라도 석·박사생이 주도한 연구로 논문을 써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학술 단체 11곳 연합체인 ‘범학계 국민 검증단’은 14일 “이 후보자가 제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 검증단은 2022년 김건희 여사 논문을 확인해 표절이라고 발표한 곳이다.
이 후보자의 해명과 제자들의 호소문은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그게 관례라면 그걸 잡아야 하는 게 바로 교육부다. 전교조는 “공교육을 책임질 자격과 리더십 부족한 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들도 “관례라는 이유로 넘어가선 안 된다” “대통령에게 부담 주지 말고 사퇴하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위장 전입, 투기 같은 사례가 나오면 스스로 사퇴하거나 지명을 철회했다.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시대’였다.
16일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종전 해명을 되풀이한다면, ‘연구 윤리 위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그게 싫다면 자진 사퇴하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거나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사회적 신뢰라는 자본은 그래야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