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드러낸 중국에 맞서려면
'발톱' 드러낸 중국에 맞서려면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을 10년 앞섰다.” 짐 팔리 미국 포드 자동차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초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할 때 한 말이다. 포드는 중국 1위 배터리 업체 CATL의 기술을 빌린 공장을 미국 현지에 짓고 있다. 100년 전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이 포드에 중국 공장 설립을 애원하는 편지를 띄운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중국이란 ‘호랑이’를 키운 건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중국의 ‘두뇌 공장’ 칭화대는 청나라가 미국에서 반환받은 ‘의화단 사건(외세 배척 운동)’ 배상금으로 설립됐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직후 미국은 중국과 과학기술 협정을 맺고, 실리콘밸리의 문을 중국에 활짝 열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도 미국이 뒷배였다. IBM·애플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고, 월스트리트의 자본은 중국 국영기업과 손잡았다. 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의 첫 해외 투자자 역시 워런 버핏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넘어 ‘기술 제국’으로 빠르게 진화했다. ‘만리방화벽’으로 대표되는 높은 시장 장벽, ‘연구 자금’으로 포장된 국가 보조금, 실리콘밸리를 거친 수백만 하이구이(海歸·유학 후 귀국한 중국인)가 중국 기술 굴기의 3대 축이었다.
미국은 뒤늦게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과 자본 공급을 틀어막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유학생의 하버드대 입학까지 문제 삼는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미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 CATL은 작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38%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전기차 시장도 중국이 제패했다. AI 분야에선 미국에 ‘딥시크 쇼크’를 안겼다.
남 얘기처럼 들리는가. 미국이 중국 기술 발전의 초석이었다면, 한국은 중국의 ‘뜀틀’ 노릇을 자처해 왔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정밀 화학 등 주요 분야에서 중국에 합작사를 세우고 기술과 노하우, 인력을 이전했다. LG화학은 2010년대 지리자동차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며 배터리 기술을 공유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LCD 패널 생산 기술을 익힌 중국 BOE는 2017년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값싼 노동력과 거대 시장이란 당근 앞에 한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국에 핵심 기술을 내줬다. 지난 2월엔 삼성전자 전직 부장이, 이달 12일엔 SK하이닉스 협력 업체 임원들이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발톱을 드러낸 중국에 맞서려면 이제라도 핵심 기술을 지키고, 기술 표준 경쟁에 밀리지 않아야 한다. 한국 기업은 기술 보안 체계를 전면 점검하고, 정부는 첨단 분야 인력·기술 유출을 막을 국내 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 국가 차원의 ‘핵심 기술 리스트’를 최신화하고, 기술 동맹을 넓혀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중국에 열어준 문이 우리 등을 찌르는 창이 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