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참으로 부끄러운 형소법 개정안

太兄 2025. 6. 12. 17:40

참으로 부끄러운 형소법 개정안

민주 12의원의 '대통령 재판 중지법'
美서도 여당이 법 고친 적은 없어
유예 기간 없이 바로 적용한다니
셀프 면죄,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입력 2025.06.12. 00:04
 

사람들은 김수영 시 ‘풀’에 빗대 “바람보다 풀이 먼저 누웠다”고 했다. 바람은 권력, 풀은 사법부다. 대통령 관련 다섯 재판 중 그제까지 두 재판부가 재판을 포기했다. 재판 날짜를 “추후 지정하겠다”면서 헌법 84조를 말했다. 이 조항은 ‘대통령은 내란·외환을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민주당은 법원에 선수를 빼앗겨 주춤했으나 조만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려 들 것이다. 그 유일한 방책이 ‘대통령 재판 중지법’이다. 지난달 민주당 의원 12인은 형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도 ‘제안 이유’로 헌법 84조를 거론했다. ‘소추를 받지 않는다’일 뿐 ‘재판’은 어찌 되는지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와 재판이 포함되도록 새로 만든다 했다.

우리가 볼 때 ‘규정이 없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설마 대통령이 거짓말한 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도 당선되는 경우는 상상을 못 했을 것이다. 둘째, 선거 전에 재판을 받고 있었으면 계속 재판받으라는 뜻이다. 셋째, 민주당이 시빗거리로 만들기 전까지 ‘소추’는 검찰 기소 혹은 국회 탄핵만 떠올렸을 뿐 재판 포함 여부를 따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규정이 없다’는 것은 법률·시행령·규칙에 허용·금지·절차·요건 등을 정해 놓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일반 해석’ ‘관습’ ‘상위법’에 따르라는 뜻이다. 우리는 ‘소추’ 하면 의당 검찰 기소로 여겼다. 그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에 앞선 보통 시민들의 ‘일반 해석’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제안 이유’에서 대통령에 대한 ‘책임 추궁의 헌법 설계’를 말하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이 ‘내란·외환’이면 형사 책임을 묻고, ‘재직 중 헌법·법률 위반’이면 탄핵 심판을 받도록 헌법은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에 해당하지 않으니 ‘재판’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오해다. 왜냐면 재판은 책임 추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이란 검찰이 제기한 책임 추궁(기소), 혹은 국회가 제기한 책임 추궁(탄핵 소추)의 시시비비를 가릴 뿐이다. 따라서 헌법에 설계된 책임 추궁 구조는 ‘피고인 이재명’의 재판과는 관련 없다.

그들은 개정안 취지 설명에서 “대통령의 권위를 확보하여 국가의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부분이 없진 않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재판 중지법 같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셀프 면죄의 입법례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것도 국가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면책 규정이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 수행’을 이유로 기소를 취하했을 뿐이다. 법원이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여당이 법을 뜯어고치려 하는 것과는 다르다.

미 연방 대법원은 대통령의 재직 중 공식 행위에 대해 면책을 인정하지만 비공식 행위나 재임 전 행위에는 제한적으로 적용한다. 이걸 우리에게 원용하면 ‘재직 중 공식 행위’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 대권 발동 같은 것이고, ‘비공식 행위나 재임 전 행위’는 이 대통령의 12가지 혐의가 해당한다. 논리 전개가 위험해진다.

대개 법률 개정안은 ‘법 시행 후 공소 제기된 사건부터 적용한다’ 같은 경과 조치, ‘6개월 뒤 시행한다’ 같은 유예 기간을 둔다. 그러나 민주당의 형소법 개정안은 부칙 제1조에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고, 제2조에 ‘법 시행 당시의 대통령에게도 적용한다’고 돼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부칙이 아닐 수 없다.

시에서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누웠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