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83]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5.06.11. 00:04
어느 저녁, 가난한 할머니가 길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검은 단지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는 안을 들여다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번쩍이는 금화로 가득 차 있잖아!” 한동안 할머니는 예상치 못한 횡재에 놀라 보물 주위를 맴돌기만 했습니다. “아, 벌써 부자가 되어 호사하는 느낌이야! 이 보물로 무엇을 할까. 커다란 저택을 한 채 사서 하루 종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여왕처럼 살 수도 있을 테고. 아!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
- 조셉 제이컵스 ‘천상의 말(馬)’ 중에서
이웃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할머니는 어느 날, 금화가 잔뜩 담겨 있는 항아리를 발견한다. 남의 시선을 피해 집으로 단지를 끌고 가던 할머니는 금으로 무엇을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할머니는 횡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아무리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단지 안엔 은 덩어리만 가득했다.
“분명 금화였는데. 하지만 은만 있어도 충분히 부자인걸.” 조금 실망했지만 할머니는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들여다본 단지 안엔 쇳덩어리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차라리 잘됐어. 도둑맞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쇠만 팔아도 꽤 값이 나갈 거로 생각했지만, 쇠는 다시 돌덩어리로 변해 있었고 돌은 또 커다란 말로 변하더니 히힝, 한 번 울고는 사라져 버렸다.
허기진 눈에 잘못 본 것이었을까? 할머니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가득 꿈을 담았던 단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그날 밤 초라하고 쓸쓸한 오두막에 앉아 생각했다. ‘난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야. 혼자 천상의 말을 보다니. 그것도 공짜로, 원 없이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동화의 결말은 지혜일까, 타협일까? 실망을 다독이고 현실을 긍정하는 마음은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삶은 자꾸만 작아진다. 기대는 줄고 상상은 좁아지고 희망은 손바닥만 해진다. 삶은 해석의 예술이라지만 ‘꿈보다 해몽’ 방식만으로는 각박한 현실을 이겨낼 수 없다. 금화를 보았을 때의 설렘, 꿈을 빼앗겼을 때의 분노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닐까. 오늘 당신의 마음속 항아리는 무엇으로 가득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