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어떻게 바꿀지 검토 없이 덜컥 대법관 수만 늘린 건가
상고심 어떻게 바꿀지 검토 없이 덜컥 대법관 수만 늘린 건가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대법관을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이 법안을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에서 곧바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상고심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대법관을 증원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나온 이슈였다. 상고 사건은 계속 증가하는데 대법관 숫자는 1987년 이후 14명으로 사실상 변동이 없다 보니 대법관 1인당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연간 3000건을 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엔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했고, 김명수 대법원은 대법관 4명을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대법원 증원은 사실상 대법원 체제를 바꾸는 일이고 모든 국민이 영향을 받는 중대 사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고 당사자인 사법부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대법관 증원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앞으로 대법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 논의한 다음 숫자를 정하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일 것이다. 30명으로 늘리면 전원합의체 운영이 가능할지, 전원합의체를 민사와 형사로 나눌지, 상고법원을 도입할지 여부 등 대법관 수를 정하기 전에 검토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증원될 대법관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이들을 보조할 재판연구관도 늘려야 한다. ‘허리급’ 판사들이 대거 대법원으로 옮겨가면 1·2심 재판은 더 늘어질 수 있다. 이런 검토 없이 무작정 대법관 수를 두 배로 늘리면 상고심은 물론 하급심판까지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신설에 목을 맬 때 민주당은 “공감대 형성 미흡” 등을 이유로 부정적이었다. 그 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다가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비법조인도 대법관에 임명하는 법안까지 발의하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국민을 위한 사법 개혁이 아니라 대법원에 대한 보복성 조치이자 사법부 장악용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30명 증원안대로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동안 대법관을 26명 임명하게 된다. 조희대 대법원장 말대로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문제”를 이렇게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