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 반기, 책임 회피... '기무 사화' 트라우마에 갇힌 軍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선포한 비상계엄에 따라 계엄군에 참여한 군 주요 지휘관들은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해 “윗선의 지시를 받은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위헌적이라는 점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놓았다. 검찰·경찰 등의 내란 수사로 이어진 이번 사태가 국민에게 던진 충격파가 엄청나 주요 계엄군 참여자들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공개적으로 자기 고백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일부 장성급을 포함한 계엄군 지휘관은 앞다퉈 유튜브나 언론 인터뷰에 나서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계엄군 장교단의 이런 행동을 두고 군 안팎에선 “정치에 휘둘렸던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군이 겪는 정치 트라우마와 관련해 군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때의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 해체 영향을 꼽는 사람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사찰과 계엄 준비 문건 작성 등을 명목으로 기무사를 해체했고 이 과정에서 관련 인원 200여 명을 조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수년간 사건 수사와 재판에 얽혀 고통받았다. 기무사 축소 과정에서 각 군으로 원대 복귀된 인사 중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군 통수권자와 상관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군인이지만,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고위 장교단이 정치적 판단을 강요받는 환경에 빠졌다는 말이 나왔다.
군 고위 관계자는 “다수의 군 간부는 기무사 해체의 트라우마가 상당하다”라며 “이 때문에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일지라도 위법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명령 이행 곳곳에 저항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군이 평소 준비한 대로 전광석화처럼 명령만 이행했다면 계엄은 정말 성공했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역설적으로 군인들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적법한 명령인지 확신이 떨어지자 명령 이행을 느슨하게 한 것은 오히려 비상계엄 해제를 가능하게 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12·3 비상계엄 발동 당시 지휘 라인에 있었던 군 당국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번 계엄은 이와 같은 트라우마성 저항 때문에 실패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 특수임무단 김현태(대령)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10시에 헬기 조종사에게 퇴근 지시를 해 헬기가 늦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대원들은) 11시 전에 집결했는데 제일 빠른 헬기가 11시 20분을 넘어 왔다”고 했다. 김 단장은 “인원이 다 모인 상태에서 티맵(내비게이션 서비스)을 켜서 국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조를 확인했다”며 “티맵을 캡처해 노트펜으로 건물을 표시했다”고 했다. 김 단장은 “부대원별로 무전기가 있었지만 몸싸움하는 상황에서 100여 명에게 다 전파되는지 의문이었다”며 “(국회 창문을 깨기 위해) 창문 가에서 보자고 했을 때 모인 게 30여 명이고, 나머지 50~60명은 교신이 잘 안 되고 있었다”고도 했다.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치밀한 준비도 없었고 계엄에 대한 공감도 떨어져 명령 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명령과 지시가 되풀이되면서 군이 실제 안보 위기에 작전 수행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계엄 선포가 있었고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행하려 했지만, 출퇴근 문제 때문에 이를 뒤늦게 이행했다는 건 아찔한 이야기”라고 했다. 김현태 707 단장 역시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고,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계엄 관련 지휘관급 인사들의 이른바 ‘양심 고백’이 자기 구명이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인들이 공식적인 자리를 통하지 않고 유튜브 방송이나 기자회견으로 자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군인 복무 기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김현태 707 특임단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권유로 공익 신고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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