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대출자 울리는 중도 상환 수수료, '인하' 아니라 '폐지'해야

太兄 2024. 11. 1. 16:32

대출자 울리는 중도 상환 수수료, '인하' 아니라 '폐지'해야

조선일보
입력 2024.11.01. 00:15업데이트 2024.11.01. 00:21
그래픽=양인성

금융 당국이 은행의 가계 대출 중도 상환 수수료를 내년부터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만기 이전에 갚는 대출금에 대해 물리는 중도 상환 수수료는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성격을 갖고 있다. 주택 담보 대출은 1.2~1.4%, 신용 대출은 0.6~0.8% 수준의 수수료를 물린다. 중도 상환 수수료로만 은행들이 매년 3000억원 이상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도 상환 수수료는 대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금리 변동 위험을 대출자가 지는 변동 금리 대출과 위험을 은행이 지는 고정 금리 대출 간 중도 상환 수수료율 차이가 거의 없다. 대출 갈아타기를 막기 위해 은행들이 수수료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한다는 담합 의혹도 있다. 은행들은 수수료율을 산정하는 기준과 근거도 공개하지 않는다.

중도 상환 수수료는 인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폐지해야 한다. 우리나라 가계 대출은 대부분 변동 금리 대출이라 금리 변동 위험을 대출자들이 진다. 대출 후 시장 금리가 오르거나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탈 기회가 있다면, 대출을 미리 갚거나 대출을 옮기는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중도 상환 수수료는 이를 막으려는 은행을 위한 무기다.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등에선 고정 금리 대출에만 중도 상환 수수료를 받는다. 우리도 변동 금리 대출엔 중도 상환 수수료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과도한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다. 대출 억제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마당에 빚을 미리 갚는 고객에게 벌금을 물리는 제도를 유지하는 게 맞나. 은행들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후에도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며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 중도 상환 수수료 폐지는 은행 간 대출금리 인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대출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